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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 이야기 - 톰 맥마킨

자유  2011. 3. 5. 20:13

세상에서가장맛있는빵집이야기
카테고리 경제/경영 > 유통/창업 > 창업 > 창업성공이야기
지은이 톰 맥마킨 (예지(Wisdom),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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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행복은
번쩍거리는 빌딩숲 사이를 오가는 명품 수트안에 갇힌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은 빵집에서 오가는 웃음소리와,
부모님이 어서 빵을 들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의 기다림과,
맛있는 빵을 입안에 머금었을 때 퍼지는 고소함.

이런 소소한 것들이 오히려 가장 지키기 힘든 행복일지도...


모두 허상 속에 갇혀 살고 있는듯 하다.

좋은 학위를 따야 하고,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하고,
좋은 사교 모임에 나가야하고,
어딘가에 나를 [등록]시켜야만 한다.

Registration.
그것으로 나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물론 그레이트 하비스트 베이커리는 무척 보기 드문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은 Case by case, 그때그때 다르다.
이 빵집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과 설립자 부부의 경영방침이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만가지의 경영서적, 전략책이 있지만 모든 기업이 그러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그레이트 하비스트 베이커리처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한 기업이 왜 있겠는가.

경영은 A를 넣으면 B가 나오는, 그런 수학공식이 아니다.
사람과 환경과의 Interaction은 무한한 volatility를 가지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고수해왔던 가치-
[일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일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넘나들어 가장 꿈꾸는 공간으로 존재할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다른 물질을 위해 존재하는 내가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좋은 직장을 위해 존재하는 내가 아닌,
좋은 학위를 위해 존재하는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한 당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모르게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아주 극소수이지만)
아직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보편적인 기준에 기대어 자신을 평가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기준은 자신이 만들면 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그사람들은 절대 나를 위해 살아주지 않는다.
내 삶을 사는 것은 나이다.


왜 우리는 힘들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왜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드문가?


자신에 대한 존재를 망각한 듯 보인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되었는가?
법과 질서와 도덕은 그렇다 치자.
그것은 함께 살기 위해 모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탓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현 사회는 [지나친 제도화]가 되어버린 듯 하다.
권력을 가진 자와 없는 자,
뺏기고 빼앗기는 지속되는 관계.

내가 너를 밟고 올라가야, 0.01점이라도 더 맞아야, 1달러라도 더 벌어야
나는 성공한 것이고 승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소망을 바라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 [모두가 인정하는 승리한 삶의 길]을 따라서 전진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주의가 만연해있다.

모두가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

획일적인 삶,
원치 않는 삶,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 삶을 목격해왔고,
그 현실이 답답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있고 싶은 곳에 있는,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는,
그런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오래전 나의 행복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① 사랑하는 사람들과
②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이 두 조건을 합치하기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해왔던 것 같다.

20년 남짓 살아왔던 순간은 두 번째 조건만을 위하여 달려왔던 것 같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첫 번째 조건만을 충족했을 때에는 나의 행복을 위한 나의 삶이 아닌,
당신의 행복을 위한 나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행복, 그래. 물론 행복했다.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반쪽 행복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또다시 딜레마에 빠지긴 했지만, 결국은 두 가지 조건이 모두 합치되어야만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1의 조건을 완성시키고, 2의 조건을 구해야만 서로가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나도, 상대방도, 서로를 원망하고 애증섞인 관계가 될 것이 뻔했기에.


그래, 지금 나는 잘 가고 있는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그리고 다시 찾을 것이다.
잃어버린 나의 반쪽 행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