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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대한 책임
인간은 어떻게 거인이 되었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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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인간을 유혹하는 것은 물 속에 고기가 있기 때문이다.
왜 수렵민이 고기 잡는 어로민이 되는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보다도 고기자이에는 사냥과는 다른 도구와 다른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데도 말이다.
사건의 사슬 가운데서 끊어진 데를 발견하면 그 부족한 고리를 찾아내야 한다.
수렵민은 단번에 어로민이 된 것은 아니다.
물고기를 낚기 전에 그는 물고기 사냥을 해야만 했다. 사실이 그랬다.
최초의 고기잡이 도구는 창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작살이었다.
*
이전에는 포로를 노예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 짓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늘어도 특별한 이익이 없었다.
포로는 일을 시킬 수 있지만, 그 대신 일해서 얻은 것만큼 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한 가축떼와 비옥한 경지가 생겨
한 사람의 노동이 그가 먹어치우는 것 이상으로 곡식과 고기와 털을 생산하게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농경민은 곡식을 짐승털과 바꾸기 위해 자기들이 필요한 것 이상의 곡식을 거두려고 했다.
목축민도 자기들이 옷을 입기 위해 필요한 이상으로 양을 기르고자 애썼다.
양털은 곡식이나 무기와 바꿀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씨족이나 가족은 교환을 통해, 때로는 약탈을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살게 되었다.
그들은 가축을 더 갖게 되었고, 곡식의 씨앗도 더 많이 뿌렸다.
그러므로 양떼를 지키거나 토지를 경작할 일손이 늘 부족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노예에게는 자기의 노동으로 자기 자신을 부양하고,
주인까지 먹여 살릴 만한 힘이 있었다.
주인은 노예가 힘껏 일하고 적게 먹도록 감시만 하면 족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기의 살아있는 도구로 부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멸시를 받으면서 소처럼 목에 멍에를 지게 되었다.
자연에 대한 지배와 자유를 추구하는 길 위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그 전에는 토지가 경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공유 재산이었다.
이번에는 노예가 자기 것이 아닌 토지를 경작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리는 소는 그 자신의 소유가 아니며, 그가 거둬들인 작물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
족장의 기념비에 자손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그가 겪은 원정과 전투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 문자를 새겨서 기억을 도왔다.
묘비는 최초의 책이요, 나무껍질 한 조각은 최초의 편지였다.
*
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에는 이미 예전과 같은 평등은 없었다.
여기서는 아버지가 아이들의 주권자이고 남편이 아내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나이 많은 며느리가 연하의 며느리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장 아랫사람은 노예였고, 모든 사람은 노예를 마음대로 부렸다.
*
전쟁은 벌이가 되는 사업이었다.
전쟁은 노예를 얻을 수 있게 했으며, 그 노예는 부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유민은 노예를 집에 두어 가축을 돌보게 하고, 토지를 경작시키고, 자기는 전쟁터로 달려갔다.
전쟁 덕분에 더 많은 일이 생겼다.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창과 칼이 필요하고, 전차도 필요했다.
전차에는 발 빠른 말이 매여 있는데, 그 말이 전사를 태우고 전쟁터를 달렸다.
...
씨족은 부강해질수록 방어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언덕 위에는 몇십 개의 방과 창고가 있고,
벽을 따라서 망루를 세우고 튼튼한 문을 설치한 거대한 집 - 성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고대의 매장이란 이처럼 죽은 자와 함꼐 그가 지녔던 물건들을 땅 속에 묻었다.
그 무렵 사람들의 소지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랴?
고작 목에 걸고 있던 부적이나 적을 쓰러뜨린 창 정도였을 것이다.
집안의 물건은 모두 공동 소유였다. 생활이 씨족 전체에 의해서 공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장 오래된 무덤은 부자의 무덤과 가난한 자의 무덤의 구분이 없었다.
죽은 자는 모두 평등했다.
...
가난한 자는 무덤 속에서도 가난했던 것이다.
*
과거에는 마을 안에서는 누구나 모두 평등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균열이 부유한 씨족과 가난한 씨족을 나누고, 또 다른 균열이 수공업자와 농경민을 분열시켰다.
장인이 공동체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공동체가 그를 부양했다.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손에 들어온 것을 남김없이 나눠가졌다.
그러나 칼이나 그릇을 남에게 팔게 되자, 장인은 자기가 만든 제품과 맞바꿔 받은 곡식이나 옷감을 자기 씨족 사람들과 나눠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 곡식과 옷감은 모두 남의 두움을 받지 않고 아들들과 함께 일해서 얻은 물건이었기 떄문이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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